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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춤 2 ] 가족 지배하는 애증의 ‘지옥도’ (한겨레 2012.12.24)

연극 <죽음의 춤2>

 

스트린드베리 100주기 연극 ‘죽음의 춤2’

 

지옥 같은 부부 관계를 20여년이나 이어오던 아내 알리스는 남편 에드가르가 협심증으로 쓰러져 죽자 비로소 해방감을 맛본다. 그러나 남편이 “그들을 용서하라,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말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두 사람이 처음 사랑에 빠졌던 스무살 시절의 순수함을 회상하면서 되뇐다. “그 사람은 선하고 고결한 사람이었어! … 난 그이를 사랑했던 것 같아요.”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스트린드베리 100주기 기념 페스티벌’의 주요 공연으로 21일부터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죽음의 춤2>(사진)는 한 가족을 지배하는 지독한 애증의 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극단 풍경의 창단 10돌을 기념해 극단 대표 박정희(54) 연출가가 전체 2부로 짜인 원작 <죽음의 춤>의 2부만을 발췌해서 재구성하고 영화의 플래시백 기법으로 연출해서 무대에 올렸다. 연극은 ‘작은 지옥’이라고 불리는 섬에 살고 있는 늙은 부부 에드가르와 알리스 가족의 애증과, 이들과 관계가 얽힌 사람들 간의 갈등과 긴장을 그리고 있다.

막이 오르면 영화 편집감독(정재진)이 등장해 이 작품이 구천을 헤매고 있는 알리스 영혼의 요청으로 만든 영화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영사기를 돌린다. 감독은 극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무대 오른쪽에 마련된 영사실의 변기 위에 앉아 극중 장면을 되돌려서 편집하고 틈틈이 변기 물을 내리는 등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연극은 독선과 탐욕, 가부장적 사고의 남편 에드가르(김정호) 대령과 그런 남편이 하루빨리 죽기를 바라는 아내 알리스(김성미), 알리스와 내연의 관계에 있는 사촌 오빠 쿠르트(강동수)의 삼각관계가 한 축이다. 또 부부의 바람둥이 딸 유디트(황정화), 쿠르트의 아들 알란(최재형), 유디트를 짝사랑하는 해군 중위(김준원) 또는 극에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에드가르가 딸 유디트를 정략결혼시키려는 사단장 등의 삼각관계가 또 한 축으로 극을 지탱한다.

이 작품은 스트린드베리(1849~1912)가 여동생 부부의 은혼식에 대한 반감에서 충동적으로 쓴 희곡으로 알려져 있다. 세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겪은 스트린드베리의 눈에는 여동생 부부의 은혼식이 위선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남녀의 관계를 ‘성의 투쟁’으로 보고 ‘결혼은 감옥과 같다’고 보았던 그의 결혼관과 여성혐오가 작품에 녹아 있다. 박정희의 새로운 연출 속에서 원작의 인물들은 이미 죽어 망자가 된 채로 무대 위에 등장해 자신이 죽은 자인지도 모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욕망하는 행위를 되풀이한다. 30일까지. (02)889-3561~2.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극단 풍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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